
상위권 학생이라고 해서 모든 문제를 빠르게 풀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도척면 수학과외 학습에서 만난 한 학생은 객관식이나 답이 짧은 문제에서는 막히는 경우가 적었지만 서술형 문제풀이만 시작하면 손이 느려졌다. 답을 구하는 과정까지는 머릿속으로 알고 있는데 풀이를 적으려고 하면 어느 단계부터 써야 하는지 고민했다. 결국 계산식 몇 줄만 적고 답을 쓰거나 반대로 알고 있는 내용을 전부 적느라 풀이가 지나치게 길어지곤 했다.
처음에는 학생도 이것을 큰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문제를 풀어서 정답을 맞혔으니 개념을 이해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평소 복습도 틀린 문제보다 어려운 새로운 문제를 푸는 데 시간을 많이 사용했다. 이미 맞힌 문제를 다시 보는 것은 시간이 아깝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하지만 풀이 과정을 직접 확인해 보니 정답 여부만으로는 발견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 식과 식 사이에 필요한 근거가 빠져 있거나 조건을 사용하고도 그것을 풀이에 표시하지 않는 경우가 있었다.
특히 여러 조건을 순서대로 적용해야 하는 문제에서 이런 모습이 두드러졌다. 학생은 문제를 읽은 직후 바로 계산을 시작했고 중간 과정은 머릿속에서 처리했다. 익숙한 유형에서는 이 방식으로도 답을 찾을 수 있었다. 그런데 조건이 조금 달라지면 처음 세운 식을 수정해야 했고 그때부터 풀이가 복잡해졌다. 지우고 다시 쓰는 과정이 반복되면서 자신이 어떤 조건을 사용했는지도 놓치는 일이 생겼다.
그래서 수학 복습방법부터 바꾸었다. 새로운 문제의 양을 늘리는 대신 이전에 풀었던 서술형 가운데 풀이가 짧거나 과정이 불분명했던 문제를 골랐다. 정답을 가리고 처음부터 다시 풀되 이번에는 계산보다 문제의 조건을 먼저 확인했다. 무엇을 구해야 하는지 한 번 짚고 주어진 조건 중 어떤 것을 먼저 사용할지 생각한 다음 식을 쓰도록 했다. 풀이를 끝낸 뒤에는 답만 채점하지 않고 처음 읽는 사람이 이 과정을 보고 이해할 수 있는지도 살펴보았다.
처음 며칠은 학생에게 꽤 답답한 방식이었다. 이미 답을 아는 문제를 다시 풀어야 했고 평소보다 적는 내용도 많아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복습을 이어 가면서 자신이 자주 생략하는 부분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식을 세운 이유를 빼먹는 경우가 있었고 도형 문제에서는 조건을 확인했으면서 풀이에 연결하지 않는 습관도 발견했다. 계산 결과가 맞더라도 과정이 자연스럽지 않은 문제에는 표시를 남겨 다음 복습 때 다시 확인했다.
수학과외 시간에는 모범 풀이를 그대로 옮겨 적게 하기보다 학생이 작성한 풀이를 다시 읽는 과정에 더 비중을 두었다. 풀이가 지나치게 길다면 꼭 필요한 과정과 생략해도 되는 부분을 나누어 보았다. 반대로 두세 줄 만에 끝난 문제라면 중간에 어떤 판단을 머릿속에서 했는지 말로 설명하게 했다. 말로는 설명할 수 있는데 글로 표현하지 못했다면 그 부분만 짧은 문장이나 식으로 보완했다. 이 과정을 반복하자 서술형을 길게 쓰는 것이 잘 쓰는 것이라는 생각도 조금씩 달라졌다.
상위권 학생에게는 쉬운 문제를 무조건 많이 반복하는 복습이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다. 이 학생에게도 같은 문제를 여러 번 풀게 하는 방식은 잘 맞지 않았다. 대신 첫 번째 복습에서는 조건 확인을 중심으로 보고 다음에는 풀이 순서를 살폈다. 이후에는 불필요한 계산이 있는지 점검했다. 같은 문제를 다시 보더라도 확인할 목적을 달리하니 단순 반복이라는 느낌이 줄었다.
시간을 재어 푸는 연습도 바로 시작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속도를 의식하면 학생이 다시 예전처럼 중간 과정을 생략했기 때문이다. 먼저 풀이 구조가 안정적으로 잡히는지 확인하고 익숙해진 뒤에 시간을 살펴봤다. 학생도 빨리 쓰는 것보다 한번에 흐름을 정리해서 쓰는 편이 오히려 수정하는 시간을 줄인다는 점을 경험하게 되었다.
복습하면서 가장 달라진 부분은 틀린 문제만 중요하게 여기던 습관이었다. 예전에는 정답이면 바로 넘어갔지만 이제는 맞힌 서술형도 풀이가 불안하면 다시 확인했다. 우연히 계산이 맞았던 문제와 풀이 과정까지 제대로 이해한 문제를 구분하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답을 낸 뒤 문제의 조건을 하나씩 다시 읽으면서 사용하지 않은 조건이 없는지 확인하는 습관이 생겼다.
도척면 수학과외 과정에서 상위권 수학 학습을 살펴보면 어려운 문제를 더 많이 접하는 것만큼 이미 풀 수 있는 문제를 얼마나 정확하게 표현하는지도 중요하게 다룰 필요가 있었다. 이 학생에게 필요한 복습은 처음부터 개념을 다시 외우는 방식이 아니라 자신이 생략하는 사고 과정을 찾아내는 일이었다. 서술형 문제풀이를 다시 잡으면서 학생도 복습을 단순히 틀린 답을 고치는 시간으로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지금은 문제를 보자마자 식부터 쓰기보다 잠깐 조건을 확인하고 풀이의 시작점을 정한다. 답을 구한 뒤에도 바로 책을 덮지 않고 자신이 쓴 과정을 한 번 읽는다. 아주 작은 변화처럼 보이지만 상위권 학생에게는 이런 점검이 공부의 빈틈을 찾는 기준이 될 수 있다. 새로운 문제를 계속 추가하기보다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을 스스로 설명할 수 있는 상태로 만드는 것, 이 학생에게는 그것이 서술형 문제풀이를 다시 정리하는 가장 필요한 복습방법이었다.
